
최근 방영되어 수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기고 종영한 박해영 작가의 12부작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나의 아저씨에서 삶의 무게를, 나의 해방일지에서 지독한 정체와 구원을 말했던 박해영 작가는 이번 신작을 통해 '무가치함'이라는 가장 날카롭고도 보편적인 현대인의 결핍을 정면으로 다루었습니다. 12부작이라는 비교적 짧은 호흡 속에서 작가가 던진 묵직한 화두와 인물들의 서사를 단식하듯 천천히 곱씹어 봅니다.
1. '모자무싸' 핵심 등장인물: 결핍과 사투를 벌이는 자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은 입체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들에 있습니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겉보기엔 제각각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자신의 무가치함'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피 흘리며 싸우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 황동만 (구교환 분) 20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만년 지망생입니다. 먼저 성공하여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애써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허세를 부리지만, 그의 내면은 지독한 불안과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저 불안하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읊조리는 그의 독백은 꿈을 좇는다는 명목 하에 매일 밤 스스로의 무능함과 마주해야 하는 모든 창작자들의 민낯을 대변합니다.
- 변은아 (고윤정 분) 영화사 최필름 소속의 기획 PD입니다.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번듯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는 경쟁 체제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정작 '진짜 나'를 잃어버린 인물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완벽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느라 정작 내면은 텅 비어버린, 현대 직장인들의 고독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 황진만 (박해준 분) & 고혜진 (강말금 분) 동만의 형이자 시인 출신 용접공인 진만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는 인물입니다. 반면 제작사 대표인 혜진은 세상의 불합리한 '계급질'과 자본의 논리에 맞서 싸우며 겉으로는 가장 단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늘 무너져 내리는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분투합니다.
2. 전체 줄거리: 거창한 성공 신화가 아닌, 안온한 구원의 여정
'모자무싸'는 주변의 잘 나가는 이들을 질투하고 시기하며, 혼자만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고 믿는 20년 차 감독 지망생 황동만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냉혹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영화 제작사를 배경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창조하고 만들어내야만 가치를 인정받는 사람들의 지독한 절망을 서늘하게 비춥니다.
동만은 기성 영화사 대표에게 "네 시나리오는 가치가 없다"라며 철저하게 모욕을 당하게 됩니다. 그 순간, 드라마는 뻔한 성공 스토리의 문법을 비틀어버립니다. 동만은 좌절하는 대신, "난 내 무가치함의 끝에서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릴 거야!"라며 세상에 서슬 퍼런 선전포고를 날립니다.
드라마는 동만이 세계적인 거장으로 거듭나는 거창한 대박 신화를 그리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 제작 과정에서 얽히고설키는 감독, 배우, 기획자들의 상처와 결핍을 박해영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밀도 높은 시선으로 어루만집니다. 결국 세상이 정한 계급과 타이틀에서 벗어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만의 '안온함'과 '스토리'를 찾아가는 인물들의 해방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막을 내립니다.
3. 개인적인 느낀점 및 후기: 타인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
드라마의 제목이자 핵심 관전 포인트인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대사는 화면 밖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우리 모두의 뼈를 때리는 명대사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늘 타인의 화려한 포트폴리오나 편집된 SNS의 하이라이트 장면만을 바라봅니다. 그러고는 방구석에 덩그러니 남겨진, 전혀 편집되지 않은 나의 초라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그것들을 비교하곤 합니다. '왜 나만 제자리걸음일까', '내 세월과 내 노력은 정말 가치가 없는 걸까' 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하고 다그칩니다.
하지만 '모자무싸'는 우리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넵니다. 네가 부러워하는 그 번듯한 사람도, 상처 하나 없어 보이는 저 성공한 인물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저마다의 방구석에서 스스로의 무가치함과 피 흘리며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말이죠. 형태와 깊이만 다를 뿐,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지극히 보편적인 불안이라는 뜻입니다.
주인공 동만이 무가치함의 바닥을 찍고 올라와 던진 대사들은, 칭찬에 인색한 세상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깊은 이정표를 제시해 줍니다. 100점짜리 완벽한 정답이나 타인의 인정에 목매기보다, 내 안의 단단한 뼈대와 서사를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지독한 불안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진짜 시작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내가 부족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거치는 당연한 과정입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의 가차 없는 기준 속에서 기죽지 않고 내 몫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낸 모든 이들에게, 이 서늘하고도 따뜻한 드라마 '모자무싸'를 인생작으로 추천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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