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요즘 조용히 입소문 타고 있는 드라마가 하나 있어요. 바로 《폭싹 속았수다》입니다. 제목이 좀 독특해서 처음엔 “이게 무슨 이야기지?” 싶었는데, 제주도 방언으로 ‘정말 속았다’는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실제로 이 드라마를 보면, 속은 게 아니라 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주도의 정서, 사람 사는 이야기, 감정선 하나하나가 잔잔하게 마음에 오래 남는 그런 작품이에요.
애순과 관식, 제주에서 태어난 두 사람의 인생 이야기
이야기의 중심에는 애순과 관식, 두 주인공이 있습니다. 둘 다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물로, 어린 시절부터 얽히고설킨 관계예요. 친구 같기도 하고, 남보다 더 가까운 사이 같기도 한 그런 미묘한 관계로 시작됩니다.
애순은 활발하고 야무진 성격에 글 쓰는 걸 좋아해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지만, 1960~70년대 여성으로서 꿈을 꾸는 일이 쉽지만은 않죠.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애순은 수없이 부딪히고, 때론 포기할까 고민도 합니다.
관식은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입니다. 애순을 늘 마음에 품고 있지만, 쉽게 표현하지 못해 오해도 생기고 서로를 놓치는 순간들도 생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인생의 여러 굴곡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시 마주하게 되는 운명 같은 관계를 이어갑니다.
이 드라마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사계절처럼 풀어냅니다. 봄처럼 설레고, 여름처럼 뜨겁고, 가을처럼 쓸쓸하며, 겨울처럼 담담한 인생의 흐름을 따라가죠. 청춘 시절은 아이유와 박보검이 연기하고, 중년 시절은 문소리와 박해준이 맡아 세월의 무게까지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시대의 공기와 제주도의 정서가 살아 있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단순히 두 사람의 로맨스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와 장소의 공기를 진하게 담고 있어요. 배경은 1960~1980년대 제주도인데요, 그 시절의 생활 모습이나 사회 분위기, 여성에 대한 기대와 제약, 그리고 제주도라는 지역이 가진 문화적 특성이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자주 들리는 제주 방언도 처음엔 낯설지만, 보다 보면 그게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배경이 되는 집, 시장, 학교, 밭, 바닷가 같은 공간들이 관광지가 아닌 진짜 삶의 현장처럼 느껴지는 것도 인상 깊어요.
또 시대극답게 당시 유행했던 노래나 소품, 의상 등도 디테일하게 재현되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어요. 누군가는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 시절을 새롭게 이해할 수도 있을 만큼 정성이 느껴집니다.
천천히, 하지만 깊게 스며드는 이야기
이 드라마는 자극적이지 않아요. 막장 요소도 없고, 속도감도 빠르지 않아서 처음엔 좀 심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 회, 두 회 보다 보면 어느새 등장인물의 감정선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랑이든 꿈이든, 혹은 가족과의 갈등이든…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만한 이야기들이 아주 솔직하고 조용하게 그려져 있어서 마음이 자주 움직이게 돼요.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감정들, 쉽게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 같은 게 화면에 오래 남습니다.
마지막 회를 보고 나면, 큰 사건이 없었는데도 뭔가 한 편의 인생을 다 들여다본 것 같은 묵직한 여운이 남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두고 ‘힐링 드라마’, ‘인생 드라마’라고 부르는 듯합니다.